자기계발/독서일기
016. 원데이 (데이빗 니콜스)
보리랑
2019. 9. 27. 08:17
내가 친구와의 만남이 일년에 한번 될까 말까 하여 관심이 갔던 영화이다. 몇년간 영화도 미루고 책도 미루다 책부터 읽는다. 남편과 7년간의 아슬아슬한 관계가 내가 포기 선언함으로써 뜻하지 않게 편안해졌다. 그래서 일탈스런 책을 읽을 용기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불안감이 줄었고 돌아갈 항구가 있는 느낌이라서.
독서모임 날이 되어서도 겨우 30쪽 읽다. 이렇게 메마른 사람이라니... 물론 일 때문이라기 보다도 2주전 시작한 스페인어 암송에 푹 빠져서이기도 한다. 외국어가 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다.
영화는 잘생긴 배우만 나와서 그러려니 하지만, 책에서 서로 완벽한 외모 때문에 서로에게 빠지다니 좀 놀랐다. 서로 제눈에 안경일 수도 있지만... 내가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지만...
내 드레스들과 내 보석들이 전부 동시대 인류(노예)들의 피에서 짜낸 것임을 말야. P31
내가 딱 깻잎을 먹을때 이 느낌이다. 동남아 노동자들의 저임금으로 어렇게 싸게 먹는 것임을 알기에... 영국에 별 관심은 없지만 영국사회를 잘 그렸다 해서 이 책에 호기심이 간다.
첫 무대인 것처럼 또박또박 대사 처리하고, 관객 애들이 절대 여러분들을 위협하거나 괴롭히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는 거. 호응이야 좋지만 폭력을 좌시해선 안 되지. 애들한테 휘둘려선 안 돼. P35
학교로 순회공연하는 연극 감독이 하는 말인데, 꼭 나한테 하는 말 같다.
엠마는 길고 꼼꼼하게 편지를 썼다. 농담과 덱스터를 놀리는 말과 서투르게 감춰진 열망으로 가득찬 그 2천 자의 글씨들은 항공우편용 편지지 위에 펼쳐 놓은 사랑의 행위였다... 그녀는 거기에 과도할 만큼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았다. 덱스터는 허전하다 못해 허무한 내용의 엽서들을 보내 왔다. P38
진주로 유학 와 중간에 고향으로 돌아가 버린 후 남해에서 부산에서 독일에서 허무와 고독이 가득 담긴 편지를 보내던 동선은 안정보다는 사랑을 택하며 뒤늦게 세 아이 엄마가 되었다. 가까운데 사는데 한번도 만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 서로 너무 달라져서일까?
덱스터는 자기 나이가 마흔다섯 혹은 쉰이 되면, 자신에게도 임박한 부모님의 임종을 꿋꿋하게 견뎌내게 해줄 일종의 구급상자 같은 정서적, 정신적 장치가 생겨나리라고 여겼다. P190
동생들도 그랬지만 아버지의 죽음 앞에 이상하리만치 참으로 초연했다. 뭔 얘기를 해도 잘 울던 나에게 내 의도에 의해 정신적 장치가 좀 자리잡은 까닭이다. 늘 병원생활에, 40대에도 사형선고를 받으신 적이 있는지라 72세까지 사셨다는 건 기적 같았다.
같이 큰 집에 모여 평생을 함께 살자는 말인가? 말도 안된다. 친구란 옷과 같은 것. 딱 맞을 땐 좋지만, 결국 닳아 헤지거나 몸이 커져 안 맞게 되고 마는 것이다. P277
그들의 우정은 시든 꽃다발 같았다. 그녀는 계속 꽃병의 물을 갈며 꽂아 두고 있는 중이고. 말라비틀어지게 내버려 둬야 하나? 우정이 영원하리라는 기대는 비현실적이다. P280
어릴 적 우정과 멀어져 아쉬워 하나, 인연에도 기한이 있다 한다. 겨우 연락이 닿아 소통을 다시 시작한 친구들이지만, 그들이 연락을 달가워 하지 않으니 이만 보내주려 한다. 새 우정에 감사하며 말이다.
그녀는 불륜이 중년의 중산층에게나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금 그녀 자신이 혼외정사의 당사자가 되어 ... 온갖 자잘한 과정들을 겪고 보니, 불륜이란게 얼마나 평범한 것인지, 또 육체적 욕망이란 게 죄의식이나 자기혐오와 맞물리면 얼마나 강력한 감정으로 승화되는지를 깨닫고서 놀랐다. P320
또 시작이다. 뭐가? 노처녀 동정하기 말야. 난 완전 만족해. 난 내 남친에 의해 규정되는 것도 싫어. 남친이 없는 걸로 규정되는 것도 싫고. 그런 일에 신경 쓰는 거 일단 그만두고 나면 말야, 데이트나 관계, 사랑, 그런 거 말이지. 그럼 진정 자유롭게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난 지금 하는 일이 있고, 이 일을 너무 사랑해. 돈은 보잘것없지. 하지한 난 자유로워. 오후에 영화도 보고 그런다니까. 나 수영도 많이 해. P413
엠마가 그의 가슴팍에다 대고 따뜻하게 웃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엠마 몰리를 웃음 짓게 하는 일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은 없구나... 약속해?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P425
그의 주머니 안 휴대전화 메모리에는 지난 10년간 그가 만났던 수백 명의 전화번호들이 넘치게 저장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세월 동안 그가 진정으로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사람은 오직 하나, 바로 지금 옆방에 서 있는 여인 뿐이었다. P497
사랑이나 성문제에 있어서 한국인의 정서로는 좀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만, 그동안 면역이 생긴 탓인지 결혼 전에 연애를 많이 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인지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양인의 정절 관념이 동양인보다 많이 느슨한가 보다.
노동당을 지지하고 분배를 옹호하는 여주인공. 자유경쟁을 옹호하는 남주인공. 서로 평행선을 걷는 듯하지만 15년 가량의 방황과 엇갈림 속에서 유연해진다.
이쁘게 보일 수 있는 컨택트렌즈보다는 보급 안경을 쓰려는 여주인공. 자칫 일은 안하고 복지에 의존하려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내 힘으로 사는 건 자존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복지는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나, 벗어날 가망은 있으나 마중물이 없는 사람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AI 때문에 일자리가 없는 세상을 살아갈 우리 자녀세대에게는 더욱 분배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