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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4.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김보통)
    자기계발/독서일기 2019. 9. 5. 00:27

    휘리릭 넘기니 <하마터면 열심히 살뻔 했다> 류의 책인가 하고 살짝 짜증이 났다. 내 힘을 살짝 빠지게 하는 책이었기에. 선입견일 수 있으니 다 읽기로 한다.

    목차에 1부 2부 제목이 마음에 든다. 우울한 행복 속에서, 불안한 자유 위에서.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책을 읽으면 감이 오리라.

    7년간 온갖 일을 다 겪으며 수업만 하다 외출하니, 세상은 많이 변했고, 문해력이니 듣지 못한 단어들이 쓰이고 있다. 그렇게 제2의 사춘기를 호되게 치뤄냈다. 건강도 관계도 부도 최저점을 벗어나서 기쁘다.

    사춘기를 늘 우울하게 보냈다. 상고를 가고 동생들 공부가 끝나는 29살이 되면 삶을 마감하리라는게 내 계획이었다. 인문계를 갔고 대학을 갔고 공기업에 입사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29살이 되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꿈이 의사인데, 지금 공부 시작해도 40에야 일을 할 듯 하니 맘이 급해 퇴직하다. 둘 다 29살이었다니 소름 돋는다. 내 앞가림을 못한 것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엄마의 한탄을 들어야 했다. 친정을 한 푼도 도울 수 없기에...

    신입사원 연수 얘기가 나오는데 지독한게 S사가 아닐까 생각된다. 동기들도 S사를 많이 갔는데, 졸업식때 배지를 달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내가 몰랐을 뿐 졸업생들 간에 부러워 하거나 자랑스러워 하는 기류가 있었을 터이다.

    회사를 비좁고 갑갑한 우주선에 비유하다니... 우주선을 타기 위해 엄청나게 긴 시간 동안 노력해... 우주선을 벗어나면 기다리는 것은... 그러나 그제사 웃을 수 있었다는...

    인생이 건빵이라니... 퍽퍽해 잘 넘어가지 않지만 사이사이 별사탕이 있어 꾸역꾸역 먹게 된다는...

    아무도 나를 모르고, 나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왔다... 내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P65

    그저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그 막연함이 좋았다. 그동안 나는 막연함과는 거리가 먼 세계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가고 싶은 대로 혹은 발 닿는 대로 걷는 것은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을 의미했다... 좋았다. 그뿐이다. 내가 필요한 건  조금 걸을 수 있는 시간이었을는지 모른다. P71

    '여행을 통해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한다'는 건 말 그대로 팔아먹기 좋게 편집되고 가공된 예쁜 허구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는 다를 것이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직장에서 도망치고 모국에서도 도망쳤는데, 이제는 어디로 더 도망쳐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P74

    바닥에 누운 채 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냥 뭐라도 하고 있다, 는 기분을 느끼고 싶은 쪽에 가까웠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고통은 참아야 한다'  라생각이 내 모든 불행의 원천이었다...  '불행해지지만 말자' 는 현재에 관한 것이다. P110

    이쪽 생활이라는 게 말이지, 카드게임 같아... 뭐가 나올지도 모르는 그 카드로 이겨야만 게임을 계속해나갈 수 있어. 운이 좋아서 한 판을 이겼다고 쳐...

    유튜브에서 자주 들은 '복잡계' 얘기인듯하다. 어찌 될지 예측할 수 없고, 운의 요소가 상당한...

    불나방... 저자는 마을도서관 이라는 이상을 위해 책을 사들이나 공간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

    위암 3기에도 수술 후에 회사에 복귀하는 과장 얘기가 나온다. 죽어도 일하다 죽어야 헛되지 않다고. 겁도 없이 회식에서 술을 마신다. 한국에서 질병이나 사고는 추락을 의미한다. 아~ 사회안전망~

    마침내 방에 쌓인 책박스를 연다. 빈곤이 생기는 과정에 대한 책이 있다.

    이윽고 모든 것에서 배제된 개인은 우선적으로 식생활의 질을 낮추어 최소생계비로 생존을 도모하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자각으로 이어져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스로의 존엄을 포기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P172

    나도 10대와 40대에 이같은 일을 겪었다. 견디고 지나와서 다행이다. 그 원동력은 그렇게도 내 부모가 아니었으면 했던 부끄러웠던 내 부모님께서 왔다고 본다. 물론 책의 도움도 있었을 것이다. 나를 믿어준 부모가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지금 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맘 아프기도 한데 자신의 인생 여정을 가는거라 위로하곤 했는데, 어쩌면 유산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놓치 않을 힘. 비록 지금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을지라도 제갈길을 찾아갈 것임을 믿는다. 늦게 핀 꽃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선은 맛있는 것을 먹기로 했다. 그래야 바닥에 내팽개쳐진 내 존엄을 다시 챙길 수 있을 테니까...  기분이 좋아진 상태에서 하고 싶은 '작은 일'을 하면 된다.  P175

    물론 산적한 다른 문제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맛있는 것을 먹어야 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공포는 잠시 미뤄둔 채 일단 맛있는 것을 먹어보기로 했다.  P178

    인기만화가의 탄생 스토리가 시작된다. 디저트를 만들고 그려보고. 어릴때 이미 그림을 잘 그렸었다. 엄마한테 유전 받았겠지만 예술가들은 좀 멜랑꼴리 하다는 일반화를 하게 되네. 딸들도 남달라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아~ 비행기까지 타고 광주비엔날레 데려가시는 선생님의 사랑이 부럽다. 빛나는 재능 덕분이겠지만 귀인이라 본다.

    "보통아, 내가 말했잖아. 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선생님의 이글거리는 눈을 상상하니 그만 웃음이 나왔다. 웃는 건 오래간만었다. P197

    초조해하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지난 삶에서  초조함에 쫒겨 선택한 결과가 어땠는지... 느긋하게 그림을 그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도 나아질 거라 믿으면서. P208

    아~ 가슴 뭉클함에 책을 덮다. 사람들 프사를 그려주는데 악플도 있지만 버티는 이유는 그의 그림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기에. 내가 감동한 건 사연을 담은 사진들이 속속 도착한다. 누군가의 삶의 소중한 한 자락을 엿본다. 의도한건 아니었지만 무료팬들이 나중에 작가의 탄탄한 백그라운드가 되었으리라.

    그 바로 앞에 대기업 영업부서에서 매일 실적 쪼이고 거의 날마다 늦게까지 이어지는 회식 얘기가 나온다. 나라면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단 한 번의 실패가 곧 사회적, 실제적 사망은 의미하는 사회에서 운좋게도 중도에 탈락하지 않고 늙어 병들게 된... P271

    29살 그녀. 딸도 둘 낳고 5년을 버틴 뒤 공기업을 못 견디고 의사가 되는 꿈을 찾아 퇴직한다. 내 힘으로 하는게 아니라서 두달만에 포기하게 된다. 퇴직할 때는 장미빛이었지만 실패, 사회적 사망이었다. 그래도 중년에 꽃핌을 꿈꾼다.

    이제야 비로소 보인다. 내내 자신감 없고 무표정인데 표지엔 웃고 있다는게.

    이제는 안다. 환하게 웃으며 '참고 견뎌 오늘의 성공이루었으니 여러분도 노력하세요'라고 말하는 그 사람은 수많은 사람 중 운좋게 행복의 동아줄을 낚아챈 단 한 명이라는 것을.  그런 것은 이제 관심 없다.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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