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펌) 백아와 종자기 (류시화)
    자기계발/독서일기 2023. 8. 4. 07:56


    『열자』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진나라의 높은 관직을 지낸 백아라는 이가 있었다. 젊었을 때 스승 성연에게서 거문고를 배웠으며, 얼마 후에는 연주 실력이 수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감명을 준 것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런 마음을 눈치챈 성연이 말했다.
    "동쪽 바다에 계시는 나의 스승님은 거문고에 능할 뿐 아니라 예술성까지 지도할 수 있으니 가서 가르침을 받아 보자."

    백아는 성연의 권유를 받아들여 함께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났다. 동쪽 바다의 신령한 섬에 도착하자 성연은 백아에게, 스승을 부르러 가는 동안 거문고 연습을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배를 타고 사라졌다.

    백아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으나 스승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마음을 슬픔으로 가득 찼다. 흐르는 물, 날아다니는 갈매기, 고요한 숲이 모두 슬픈 선율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무수한 감정이 마음속에 차오르자 그는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음악에 더 많은 표현력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았다. 스승은 백아가 자연의 품에서 영감을 얻도록 일부러 그를 홀로 남겨 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백아의 거문고 연주는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의 음악을 당대의 모든 사람이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날 백아는 순회 공연 도중에 태산 아래를 흐르는 강에서 배를 타고 있었다. 갑자기 폭풍우가 몰아쳐 감성을 자극했고, 백아는 산기슭에서 비가 멈추기를 기다리며 거문고를 꺼내 연주를 시작했다. 누군가가 듣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선율이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연주를 마치자, 저만치에서 비를 피하고 있던 젊은 나무꾼이 말했다.
    "이것은 분명 비가 휘몰아치는 소리이군요."

    반가운 마음에 백아는 이번에는 그 사람을 위해 손가락에 힘을 주고 산의 웅장함을 찬미하는 곡을 연주했다. 그러자 나무꾼이 감탄하며 말했다.
    "하늘에 닿는 태산처럼 선율이 웅장하고 위엄이 있습니다!"
    백아는 이 사람이 자신의 음악을 이해한다는 것을 알았다. 열정으로 가득한 백아가 거센 물결을 담아 연주하자 나무꾼이 말했다.
    "이번 선율은 끝없이 넓은 강물을 보는 것 같습니다!"

    평생 산지기로 살았는데도 나무꾼은 백아의 거문고에 실린 감정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백아는 거문고를 내려놓고 나무꾼을 배로 초대해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말했다.
    "내 가슴의 친구를 드디어 만났습니다! 당신만이 진정 나의 음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비가 그치자 두 사람은 배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백아는 나무꾼의 이름이 종자기이며, 지식과 꿈을 가진 청년임을 알게 되었다. 『열자』의 기록에 따르면 백아는 현격한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음악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종자기와 첫 만남에 좋은 벗이 되었으며, 멀리서 보면 친형제와 같았다.

    두 사람은 백아가 순회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면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일 년의 시간이 흐르고 백아가 찾아갔을 때 종자기는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였다. 백아는 너무 슬퍼서 종자기의 무덤 앞에서 통곡하며 슬픈 곡을 연주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이제는 내 음악을 들을 줄 아는 '지음(知音)'이 없으니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말하고 거문고를 부숴 버렸다. 그 후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음을 이해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음악을 이해한다는 뜻의 '지음'은 마음이 서로 통하는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당신에게는 지음이 존재하는가? 혹은 당신은 누군가의 지음인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관계는 나의 '음'을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처음 만났는데도 내 마음의 '음'을 아는 사람, 마치 몇 생을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이유도 모른 채 바로 마음이 연결되는 사람, 무슨 말을 할지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지음은 단순히 비슷한 성격이나 취미를 가진 것을 뛰어넘어 영적 유대감으로 이어져 있으며, 정신적, 정서적, 영적 차원에서 동일한 감수성과 파동으로 공명한다. 태어나기 전에 선택한 가족이 더 이상 자기 운명의 실현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의 음을 아는 사람을 찾기에 언제라도 늦지 않다. 최악의 일은 혼자 삶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혼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과 삶을 보내는 것이다.

    자신의 음, 특히 영혼의 음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삶이 가져다주는 행운이고 축복이다. 나의 ‘음’이 불협화음이 아니며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확인해 주는 이, 그래서 아직은 미숙하고 불안정한 나의 음에 힘과 마법이 깃들게 하는 이가 나의 지음이다.
      
    류시화님의 글 옮김

Designed by Tistory.